신성 과의 조우

당시 고통과 두려움에 절어 있던 나는 신나이를 만난 이후 3년 동안 두려움의 해결 방안에 대해 신께 갈구했다. 두려움을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자 어느 날 ‘두려움 없는 믿음과 용기로 나에게 오라’는 내면의 가슴에서 울리는 말씀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두려움을 내려놓으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이어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신과 나눈 이야기 메시지에는 ‘가슴의 변화, 믿음의 변화, 용기’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가슴의 변화, 믿음의 변화, 용기 이 대목에서 박수를 쳤다. 나 자신을, 내 가슴을 변화시키자! 그런데 문제는 당시 내 가슴이 너무나 딱딱하게 두려움으로 굳어 있었다는 것이다. 내 삶은 두려움과 근심걱정으로 늘 불안하고 초조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슴이 한껏 쪼그라들어 있었다. 가슴이 꽉 막혀 닫힌 상태로 가슴을 열고 싶은데 가슴이 열리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주먹으로 내 4차크라 가슴을 하루에 3천 대, 4천 대씩을 계속 두들겨 댔다. 가슴을 변화시키기 위해 피멍이 생긴 가슴에 스스로 부황을 떠서 어혈을 뽑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치유자 입장에서 인간 가슴을 치유하다 보니 우는 사람과 울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작 나 자신은 잘 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내 가슴 안에 너무나 많은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몇 개월에 걸쳐 부항을 뜨고 또 어혈을 지속해서 빼내고 나서야 가슴이 조금씩 열리며 덜 아파지기 시작했다. 사혈과 함께 가슴을 열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기도를 하면서, 그때부터 눈물이 주르르 나기 시작했다.

인간은 가슴이 정말 찢어지게 아프게 되면 반작용으로 그것을 치유하려는 무의식이 발동한다. 그리고 그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영혼이 깨어나는 과정인 것이다.

신나이는 지구상의 모든 경전의 합본이며 나에게는 경전 중의 경전이다. 물론 남에게는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를 깨워 내 안에 잠자고 있는 고통체를 치유하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면서 내면의 영혼이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밟는 데 아주 충실한 교과서 역할을 해 준 것이 신나이 책자이다.

신나이를 탐독하고 천부경 81자를 독송하는 수련을 계속해 나가면서는 우주의 볼텍스 에너지가 빛으로 더욱 강하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때 눈앞에서 녹색 빛이 엄청나게 찬란하게 비치는데, 3일 동안 눈을 뜨나 감으나 휘황찬란한 연녹색 빛을 본 적이 있다. 그 녹색 빛이 왜 보이는지 무엇인지 의미를 알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온갖 자료들을 다 뒤지는 과정에서, 기적의 손 치유라는 책이 또 우연히 나와 마주치게 되었다.

설명에 의하면 연녹색은 ‘영혼의 치유자 혹은 영혼의 치유자를 양성하는 자’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때 나는 적지 않은 놀라움과 함께 ‘결국 그렇게 되겠구나, 내가 그런 길로 가고 있구나’라고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기적의 손 치유나 신과 나눈 이야기, 천부경 등은 모두 하나같이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우주 에너지장의 비밀을 명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우주 그 자체는 빛과 소리,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않은 에너지체가 진동하는 에너지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진동에너지는 내 몸을 통해, 바로 내 몸에 깃든 아직 잠들어 있는 영혼을 깨운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영혼을 깨우는 힘, 그것이 바로 빛과 소리인 것이다.

치유자로서의 본격적인 여정의 삶을 살기 이전, 나는 스스로의 치유 과정에서 가슴의 중요성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다. 무엇보다도 굵직한 시련과 역경을 마주하며 가슴의 상처가 너무 많았던 내 자신은 꽉 막힌 가슴으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다행히 천부경과 신나이, 기적의 손 치유라는 책들의 지식을 내 것으로 지혜화하며 스스로 가슴을 여는 법을 터득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빛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의 진동을 끌어올려 영혼을 각성시켜 주는 교감자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어떤 상태에 도달해야 자신의 신성이 발현 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인가? 혹자는 내면의 신성이 드러났다면 완전한 견성의 상태나 본성의 자리를 찾은 상태인데 그 기준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자리는 불가의 오도송이나 선승의 인가와 같이 의례적인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3자의 확인이나 판단이 아닌, 스스로가 흔들림 없이 인정하고 확신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감사함 외에 달리 어떠한 행위나 표현 수단도 있을 수 없었다. 오로지 존재 상태에 거할 뿐, 죽음도 두려움이 될 수 없었다. 강력한 황금빛의 에너지장 속에서 감사의 눈물만 몇 시간을 흘렸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안에 거하고 있는 그 신성이 깨어났음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할 수 있었다.

현재로서는 과학적으로 객관성을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몇 가지 공통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첫째는 모든 차크라의 크기가 10cm 이상 열린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차크라의 공명과 펜듈럼을 이용해 확인할 수 있다.

둘째로는 특정 진동대의 오라장이 유지된다는 점이다. 내면의 신성이 드러나면 보랏빛이나 흰빛의 오라장이 빛의 몸으로 항상성을 갖는다. 물론 인간의 삶 속에서 외부의 반응에 따라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10분 정도의 명상 상태로 곧 회복 될 수 있는 힘이 있다.

또, 나에게는 정성적인 여러 특징이 나타났다.

심정적으로는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내가 죽어도 좋다, 신성이라는 근원적 존재와의 분리의 환상에서 벗어나 어떤 고통이든 기꺼이 감내 하겠다는 마음이 든다. 세상으로부터 비난이나 사이비, 가짜 등 별의별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지만, 그 지탄과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며 신의 소명을 전하는 일을 하겠다는 결심이 선다.

자기 확신 속에서 소명 의식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이전에는 꿈도 꾸어 본 적이 없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 되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살고 있다. 나에게 소위 영성 공부의 목적은 내게 직면한 고통을 벗어나려고 시작됐다. 그런 내가 내면의 신을 찾는 과정 속에서 마음이 변하고 영혼이 깨어나 생각지도 못한 소명 의식을 깨닫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감히 어떻게 인류를 깨우겠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예전에는 돈과 명예와 권력 등 세속적인 대상을 꿈꾸었다면 지금은 소명 의식만 남아 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내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어간다.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그 고민만이 꿈이다. 나에게 하나님의 뜻은 신과 나눈 이야기의 핵심과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